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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건강한 위험이 살아있는 놀이터

By SeoulStoryMaster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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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노상미)


놀이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어린이들의 타고난 놀이욕구를 자꾸만 제한하는 놀이터이다. 이런 놀이터에 가면 제지하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아이들이 놀면서 떠드는 소리보다 크게 들린다. 다른 특징은 경고 문구가 여기저기 크게 붙어 있다. 그 가짓수는 점점 늘어 10가지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 사회가 놀이터를 대하는 태도와 철학이 무엇인지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바로 ‘안전’의 문제다. 

또 다른 놀이터는 어린이들의 놀이 욕구를 충분히 드러내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허용적인 놀이터이다. 제지하거나 금지 문구가 없거나 적은 것은 물론이고 어른들이 놀이터에 들어와 어린이에게 “이걸 해라 그건 안 된다” 하는 목소리는 작다. 그러나 이런 놀이터는 당장 ‘위험’이라는 반론에 부딪힌다. ‘안전과 위험’이라는 경계는 어디이고 이 둘은 어떻게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까?


(사진 제공: 최재훈)


결론부터 말하면 놀이터를 만들 때 고민해야 하는 ‘안전과 위험’은 철저하게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현재 우리 주변의 많은 어린이 놀이시설은 그곳을 이용하는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보다는 ‘안전’을 지나치게 고려하고 있다. 그 결과 ‘안전한 놀이터’가 완성된다. 덕분에 놀이터는 전반적으로 안전한 시설을 갖추었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어린이는 3가지 큰 장애와 맞닥뜨린다.


첫 번째는 수준이 너무 낮고 두 번째는 한없이 지루하며 세 번째는 그래서 본래 용도 대로 놀 수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 수준은 쉽게 이야기해 ‘레벨’의 문제이다. 초등학교 전 학년이 이용 가능하다고 만들어 놓은 놀이시설이 유치원·어린이집 아이들이 이용하기 알맞은 정도라면 어린이들은 이 놀이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놀이터는 어린이들에게 몹시 매혹적인 공간이어야 하는데 지루하다면 그곳은 놀이터의 기능이 사실상 멈춘 곳이라 보아야 한다. 문제는 세 번째이다. 놀이터에 가도 수준이 낮고 지루하니 기존의 놀이기구를 다르게 사용하려는 욕구가 자연스레 생긴다. 진짜 ‘위험’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진 제공: 최재훈)


‘안전한 놀이터’는 가상이고 신화이며 마케팅이다. 놀이터는 어린이가 ‘도전과 위험’을 만나고 그것을 실험하는 곳이다. 여기서 말하는 위험은 당연히 리스크(RISK)를 말한다. 위험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HAZARD와 RISK이다. HAZARD는 위험은 위험인데 놀이터에 놀러 온 어린이가 인지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위험을 말한다. 예를 든다면 누군가 던져놓은 깨진 유리병이라든가 삭아가는 난간 구조물은 예상 못 한 위험이다. 놀이터에서 HAZARD는 당연히 점검되어야 하고 제거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RISK는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까 좋은 놀이터는 HAZARD는 제거되고 RISK는 잔존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RISK를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나는 ‘건강한 위험’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 쓰고 있다. 다시 말해 놀이터는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도전할 수 있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많은 놀이터는 HAZARD도 RISK도 없는 밋밋한 놀이터로 가고 있고 거의 굳어진 상태이다. 



(사진 제공: 최재훈)


낡은 ‘놀이터 안전신화’를 거부한다. 그리고 이런 변화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고 믿는다. 그러나 아직도 ‘위험’에 주춤거리고 주저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우리는 진정 어린이가 원하는 놀이터가 무엇인지 현장에서 오래도록 살피고 어렵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이 사는 이 서울이라는 도시는 안전과 위험이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집을 나서고 길을 걷고 차를 타고 다니는 것들을 보라. 도시는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고 직선이 아니라 여러 움직임이 얽혀있다. 어린이가 살아갈 실제의 세상은 그렇게 평탄하지 않다. 어린이들을 위험에 빠뜨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안전과 더불어 위험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다룰 수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그 위험을 피하거나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때로는 정면에서 위험과 맞닥뜨리기도 해야 한다. 그런 위험을 허용된 밝은 장소에서 만날 수 있게 놀이터가 디자인되어야 한다. 놀이터는 다른 말로 ‘건강한 위험을 배우고 도전하는 허용된 학습의 장’인 셈이다. 



(사진 제공 : 최재훈)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들의 성장에 어떤 놀이터가 필요할까? 놀이를 제한하는 놀이터일까. 놀이를 북돋는 놀이터일까? 답은 자명하다. 그러나 잊지 않아야 할 것은 한국사회 놀이터 논의에서 ‘건강한 위험’ 주장은 이제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한꺼번에 큰 걸음을 떼서 놀라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놀라게 해서도 안 된다. 왜 놀이터에 ‘건강한 위험’이 어린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것인지 부모와 교사와 행정과 시설업체와 놀이터 안전검사기관에 끊임없는 설명과 이해를 구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쉬지 않고 꾸준히 조금씩 레벨을 높여 ‘건강한 위험’이 있지만 안전한 놀이터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기는 어린이들의 성장을 치밀하게 기록하고 보고해야 한다. 그런 세월이 쌓여야 신뢰가 만들어질 것이다. 믿음이 생기고 그런 신뢰가 결국 놀이터에서 ‘위험과 안전’의 균형이 필요함을 함께 깨우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국의 어린이놀이터는 조금씩 진화할 것이고 어린이로부터 사랑받는 곳이 되지 않을까. 


(사진 제공 : 최재훈)


서울에는 놀이터가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서울숲공원 숲속놀이터, 구로리 상상놀이터, 사당4동 새싹어린이공원을 가보길 권한다. 서울숲공원 숲속놀이터는 오래되었지만, 놀이의 흔적이 많고 구성도 다양하다. 구로리 상상놀이터 또한 오래되었지만, 놀이기구가 튼튼해서 아직 이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내구성과 어린이들의 도전을 함께 담은 곳이다. 사당4동 새싹어린이공원은 가까이 사는 주민이 가꾼 놀이터라서 남다르다. 놀이기구 위주가 아니라 어린이와 놀이가 살아있는 놀이터이다. 최근 모래놀이터와 유니세프 맘껏 놀이상자가 새로 설치되어 사랑받고 있다. 나들이삼아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




작가 : 편해문 (놀이터 디자이너)

약력 : 서울 사당동 산동네에서 놀았다. 그 아름답고 설레는 기억을 하나씩 꺼내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왔고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는 이야기를 한다. 1998년 창작과비평사「좋은 어린이 책」대상으로 받았다.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돌며 노래와 놀이 조사를 마친 뒤 아시아와 중동 아이들의 삶과 놀이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10여 년 했다. 14년 전 안동으로 귀촌해 아내와 아이와 동네 아이들과 길에서 만난 개와 살며 ‘동네 모험놀이터’를 열고 있다.「기적의 놀이터」총괄 디자이너와 서울시 교육청「놀이터 재구성 위원회」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 :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귄터의 꿈꾸는 놀이터 드로잉(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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