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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단 하나, 양천향교와 소악루

By nickname1 201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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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단 하나, 양천향교와 소악루


전국에 234개의 향교가 남아 있다면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 500년의 도읍지인 서울에는 몇 개의 향교가 남아 있을까?
향교는 조선시절 유학을 가르치던 지방교육기관인데 그런데 놀랍게도 서울에는 단 한 개의 향교가 남아 있었다.
바로 강서구 가양동 궁산 자락에 있는 양천향교다.

입구인 외삼문으로 오르는 계단 좌측에는 역대 현감과 현령들의 선정을 기리는 비석들이 모여 있는데, 1988년도에 향교를 중수하면서 지방 유림들이 주변에 있던 것들을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그 아래쪽은 전통문화행사와 민속놀이를 하는 ‘유예당’ 건물이 아담하고 예스러운 모습으로 서있다.

향교는 조선 개국 후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길 때 유학을 장려하기 위해 세운 지방교육기관으로 조선왕조는 유학을 국시로 정하고 유학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기관을 크게 확장하여 한양에는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인 성균관과 산하에 지역에 따라 중학, 동학, 남학, 서학을 세웠는데 이를 4학이라 불렀으며 중앙에 설치한 향교와 같은 교육기관이었다.

지금은 서울 땅이지만 당시는 김포 지역을 관할하던 양천현에 세워져 ‘양천향교‘라는 이름이 붙은 이 향교는 태종제위 기간인 1411년에 중앙의 4학과 함께 세워졌으니 600여 년의 오랜 연륜을 가진 문화재 중의 하나다.

건축물은 맨 위쪽에 자리 잡은 대성전을 비롯하여 전사청, 내삼문, 그리고 중간에 서있는 명륜당, 동재, 서재, 외삼문과 부속건물 등 8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학을 가르치던 교육기관으로서의 향교의 기능은 구한말인 고종 31년에 과거제도 폐지와 학제 개편으로 소멸되고 문묘기능만 남았다.
그러나 근래 들어 우리문화와 전통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곳 양천향교 명륜당에서 특별한 교육이 행해지고 있었다.
향교를 돌아보고 나오다가 명륜당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 훈장님과 학생들이 보였다.

양천향교를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궁산에 올랐다.
궁산이라는 이름 외에 성산, 관산, 파산이라고도 불렸던 이 산에는 백제시대에 쌓은 양천 고성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고, 조선조 진경산수화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이 바로 이곳 양천 현령으로 재임할 때 그림을 그렸던 정자 소악루가 날아갈 듯 서있었다.


소악루는 중국 동정호에 있는 악양루 경치와 버금가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조 13년인 1737년에 동북 현감 이유가 처음 건축했다고 전하며, 소악루에 오르자 멀리 남산과 북악산, 인왕산 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는 발아래 한강과 난지 하늘공원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소악루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자 ‘관산 성황사’가 울타리 안에 감싸여 있고 그 위쪽에 궁산 정상이 펼쳐져 있었다.
지리측량용 삼각점과 멋진 소나무들이 서있는 궁산 정상 한쪽에 조성된 전망대에 올라서자 신공항철도와 방화대교, 행주산성 등 서울 서북쪽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운동기구들이 비치되어 있어서 인근주민들의 산책과 건강관리를 하는 쉼터가 되고 있는 궁산은 임진왜란 때는 행주산성과 더불어 의병들의 집결장소였다고 한다.

서울 지방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천향교 주변에는 소악루가 있는 궁산근린공원,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의 기념미술관이 있고, 의술의 대가였던 허준 박물관도 가까운 곳에 있어 함께 둘러보면 매우 좋은 곳이다. 지하철 9호선 2번 출구에서 걸어서 7~8분 정도 거리에 있다.


출처 : 서울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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